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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와 새로운 관계 맺기

글쓴이
유진
2026년은 햇수로 케이팝을 22년째 하고 있는 해다. 대략 20년 정도 했구나 싶었는데 그걸 넘어버렸다. 무언가 하나를 진득하게 하는 것을 제일 못하는 내가, 케이팝 하나만큼은 이렇게 오랜 시간 했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긴 시간 속에서 최애를 좋아하는 방식은 비슷했었는데, 최근에 꽤 큰 변화가 찾아와서 젠더의 관점으로 해석해 보려고 한다.
2004년 동방신기의 ‘The Way U Are’에 첫눈에 반하며 케이팝을 시작했다. 최애는 믹키유천이었다. 첫 덕질이다보니 내가 얼빠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잡은 최애였다. 그 시절의 얼굴 1짱이었던 것으로도 모자라 지금도 그의 얼굴만큼은 꾸준히 끌올되며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잘생겼었다.(과거형을 붙인다) 중학생이다 보니 그런 그와 ‘사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진 않았어도, 모두가 바라는 것처럼 그의 ‘뷘’이 되고 싶었다.
LGBTQ, 퀴어, 게이 이런 단어를 알지도 못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가장 유명한 커플링 ‘유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남자와 남자를 엮어먹는 것과 그게 왜 하필 공이 믹키유천이고 수가 시아준수인 것에 대한 어떤 궁금증이나 의심은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소속사에서도 ‘유수’를 밀어주는 게 보였다. ‘유수’를 고르는 데에 취향의 개입은 없었어도, 다양한 팬픽을 읽으며 내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는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팬픽 춘추전국시대였다.
그 이후로도 다양한 아이돌을 좋아했는데, 전부 RPS를 한 건 아니었다. 그중 갓세븐은 JB를 좋아하며 뽐녕(JBx진영)을 했고 최애가 유겸으로 넘어갔을 땐 겸맠(유겸x마크)을 했다. 더보이즈는 주연을 좋아하며 쥬큐(주연x큐)를 했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RPS를 하며 어느 순간 내가 최애왼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최애가 생기면 걔를 무조건 왼쪽으로 밀어버리는구나.. 그렇구나.. 왜 그럴까…? 내가 헤녀여서…?(아마 나는 헤녀겠지..?) 최애랑 유사를 먹긴 했어도, 그와 사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바라거나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아닐수도…) 내가 먹는 유사의 개념은 이정도다.
“최애가 너랑 사귀자고하면 사귈꺼야?!“ “당연하지, 그걸 왜 거절해?”
이정도 느낌… 그러다보니 나는 그들이 롤플레잉하는 남성성도 골고루 좋아했다. 예를 들면 면도하는 모습이나 남자짓 하는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열광하는 편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를 아이돌 덕질할 때 유사 먹는 헤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이 글에서 확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더보이즈를 좋아하며 최애가 주연-현재-선우로 바뀌는 기간을 가졌는데 선우가 최애가 되며 최애른러로 바뀌었다.
더보이즈 입덕 초엔 선우x뉴를 엮어먹었고, 가끔 선른이 탐라에서 보이면 속으로 기겁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현재가 최애가 되며 현재x선우를 엮어먹는 것으로 모자라, 어느새 선우가 최애가 되어버렸다.(선우의 지각변동) 처음엔 선우라는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해석되나 싶었다. 너무 동그랗고 귀엽잖아. 그렇다면 최애른러로 변한게 아니라, 그냥 선우를 른으로 먹는 사람인 거니까 특별할 것 없었다. 그런데 이후로 라이즈에 입덕하며 원빈 또한 자연스럽게 른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최애왼러에서 최애른러로 변해버렸다.
종종 어쩌다가 변했을까 궁금했다. 그러다 워크숍을 통해 케이팝을 젠더로 해석해 보며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의 젠더를 여성이고, 아이돌과 이성애 관계를 상상해왔다. 그게 그들과 ‘사귀고 싶다’라는 욕망과 별개로, 아이돌과 나를 관계 맺는 대상으로 투사했을 때 최애가 왼이 되는건 너무 자연스러웠다. 보편적인 이성애 알페스 독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최애를 ‘아이돌, 남성’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사람, 무성’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젠더적 위치 자체가 ‘연애/성애의 자리’에서 ‘돌봄/응시/윤리의 자리’로 이동한 결과였다. 최애와의 관계에서 성적 욕망이 사라지고, 아이돌 보다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혼자만의 상상의 관계라지만 관계의 프레임이 바뀐 것이다. 위의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최애(원빈)가 너랑 사귀자고하면 할꺼야?! “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럴 수 있는 관계가 아닌데?”
어쩌다가 이렇게 바뀌었을까? 아마 그들이 했던 말들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그때 느끼는 감정을 가감없이 공유하는 편에 가까웠다. 특히 원빈이를 좋아하면서 처음 갖게 된 욕망인데, 원빈이가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상처 또한 성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상처는 생기지 않아도 되는 상처가 맞으니까. 본인은 산뜻하게 성장해 나가고 있지만, 나는 이 친구가 짊어진 성장 압박이 너무 무거운게 아닐지 걱정도 된다.
예전에는 무대 위의 퍼포먼스, 비주얼, 이상화된 남성성이 어필되었다. 하지만 20년 동안 아이돌을 좋아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듣다보니 그들이 처해있는 노동 환경 또한 얼마나 안좋은지 알게 되었다.(여기에서 그들이 버는 액수는 논외로 하자. 돈을 많이 번다고 좋지 않은 노동 환경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 생태계 속에서 체력 소모, 압박, 상처, 노동, 감정, 불안, 관계, 윤리 등등… 이런 디테일한 것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환상을 투사하던 자리가 생생한 인간성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내 최애는 나에게 너무나도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타자(노동자)다.
머쓱하지만 지금은 쇼타로x원빈을 좋아하고 있다. 아무리 최애를 사람+무성으로 바라보게 되어도 알페스는 멈출 수 없었다… RPS는 나에게  케이팝 덕질의 또하나의 즐거운 유희이기 때문에.. 이제 나는 최애는 른으로 밀어붙이고, 차애를 왼으로 두게 되었다. 내 최애와 가장 적합한 남자를 고르는데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흥미진진한 내적 서바이벌 끝에 그 자리를 쇼타로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쇼타로를 상대로 유사를 먹고 있기도 하다.(어처구니가 없지만, 타로는 나에게 원빈만큼의 돌봄 욕망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전 최애들처럼 섹슈얼한 부분이 어필되고 있다)
최애와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갖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였던 ‘디카프리오 이슈’도 해결하고 싶어졌다. 나는 사실… 그동안 27살이 넘은 아이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 24-26살 사이의 시절을 좋아했다. 워크숍 때도 이야기했지만, 그때가 ‘남자 아이돌’이 가장 빛나는 시기다. 얼굴도 반짝이고, 체력도 되고, 소속사에서 가장 밀어주는 시기다. 그 모든 것들 흡수한 최애의 모습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돌’, 그리고 ‘이성애적 매력’을 생각했을 때 가장 절정인 그 시기를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나도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이 들었을 때 탈덕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좋아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그게 어려웠다. 10년 동안 한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이 부러웠고, 은은하게 죄책감도 들었다. 이번만큼은 오랜 시간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다른 감정으로 관계 맺기를 하고 있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쿠킹 케이팝 젠더 파트를 통과하며 그런 낙관적인 기대를 하게 되었다.
글쓴이 유진
‘케이팝 하는 여자들’ 기획자. 토스 머니스토리 ‘케이팝 성공의 주역’을 시작으로 케이팝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 “탈케할거야”를 외치다가 결국 탈케를 못해 동료들과 케이팝을 뜯어고치기로 했다.
해당 글은 AAD(ArtsActsDays)에서 진행한 '케이팝 하는 여자들'의 글쓰기 워크숍, ‘쿠킹 케이팝’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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