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간의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이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제출한 신청서에 ‘한을 좀 풀고 싶다‘, ‘그간 쌓아온 한이 너무 깊고 이 장르와 저와의 골이 너무 깊어서… 끝없이 얘기하면서 풀어나가고 싶고, 이러한 소망이 산업을 나은 방향으로 이끌 해답을 찾아내는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무슨 한이 그렇게 쌓였던 걸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케이팝에 쏟으며 보냈다. 청소년기에는 매일매일 그들을 서치하고 언급하는 방식으로, 성인이 되고서는 케이팝 산업으로 진로를 잡으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그 시간 동안 조금씩 쌓인 불만은 어느새 분노가 되고, 나도 모르는 새에 한으로 변질되었다. 사랑으로 시작했던 케이팝이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워크샵 마지막 날에야 뱉을 수 있게 된 얘기가 있다. 케이팝 산업에 있어 오랜 시간 소비자로 있었는데, 예술경영을 배우면서 생산자로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아예 다른 관점, 새로운 사고를 학습해야만 했다. 생산자 시각을 배우느라 소비자로서 자아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두 관점의 간극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매 순간순간이 이제껏 지켜온 소비자로서의 소신을 무너뜨렸다. 케이팝을 소비하는 데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어떤 방향을 가지고 케이팝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토록 시끄럽게 떠들던 나인데. 이 방황이 나를 지치게 했다. 진로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기 직전에 이번 워크샵을 신청했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되기를 바라면서.
매주 워크샵이 끝나면 사람들과의 대화를 되새김질했다. 어쩌다 보니 2025년 하반기에는 일정이 너무 바빠 스스로를 들여다 볼 틈도 없이 살았는데, 일주일에 단 하루지만 나의 진심과 욕망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있었고, 덕분에 오랫동안 동결되어 있던 나에 대한 이해도도 상승했다. 이전에는 케이팝이라는 문화를 좋아하면서 쌓인 한이 얼기설기 얽혀서 단단하게 뭉쳐진 실타래 같았다면, 7주차 토요일에는 그것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이 감정은 내가 본래의 나로, 그러니까 이전에 케이팝 얘기를 하면서 무진장 시끄럽게 떠들기만 했던 나로 돌아가면서 느낀 해방감인 듯했다. 실제로 내게 ‘케이팝을 말할 때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말씀해 주신 분도 계셨다. 오래간만에 들은 이야기다. 나는 그 정도로 케이팝을 사랑했고, 사랑한다.
케이팝 팬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면서 가장 많이 부딪힌 딜레마는 ‘아이돌을 어떻게 소비할 것이냐’였다. 내가 보는 아이돌이 어디서부터 얼마나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는 어떠한 스탠스를 가지고 봐야 할까?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나온 결론이 ‘혼자서라도 전반적인 소비를 줄여보자’였다. 콘텐츠를 향한 포커스를 분산시키면 아티스트에게도, 회사에게도, 나에게도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8년 전의 나는 모든 콘텐츠를 즐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어서 올라오는 모든 인터뷰 및 기사, 20분 남짓한 라디오, 말도 안 되는 찌라시까지 다 챙겨 봤다. 그리고 결국엔 매너리즘이 왔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됐을 정보까지 과하게 받은 탓이었다. 그 뒤로는 ‘서브 콘텐츠(자체 콘텐츠, 실시간 라이브, 소통 어플 등)와 상성이 좋지 않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술경영을 전공하면서 불가피하게 이것들을 소비해야만 하는, 이용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았다. 이를 활용한 상품 기획, 마케팅 기획을 수도 없이 내놓았다.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소비자로서의 나는 이런 것들을 전혀 원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나의 입장은 그들의 노동 시간을 조금 더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지금처럼 하루 24시간 전부를 할애해야만이 케이팝 산업에서 살아남는 구조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숨쉴 수 있었으면 했다. 이는 내가 팬이어서도 있지만 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한낱 개인의 의견이다. 많은 팬덤이 콘텐츠가 없으면 관심을 유지할 수도, 계속 사랑할 수도 없다고 한다. 더불어 팬들은 아이돌의 사소한 면면을 궁금해한다. 잠을 잘 잤으면 하는 게 사랑이라고 하지 않나. 팬들은 수면의 질까지 알고 싶어한다. 콘텐츠 과다의 시대에 이것은 평균이 되었다. 이제는 회사도, 아이돌도, 팬덤도 당연하다는 듯 사적 일상을 노출하고, 공유하고, 요구한다. 몇몇은 본인의 정체성을 팬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획사와 아이돌에게 본인은 소비자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지 골몰하며, 그 단초를 워크샵에서 찾아보았다.
우리는 7주 간 스스로를 들여다 보며 케이팝에서 느낀 아주 세세한 감상을 나누었다. 콘텐츠/이벤트를 어디까지 소비할 수 있는지, 팬덤 문화에서는 어떤 점이 좋고 싫은지, 내가 최애를 어떻게 좋아하고 바라보고 있는지 등을 고민하자 각자의 취향과 기준이 나왔다. 사랑의 형태는 아주 다양해서, 백 명이 있으면 백 개의 형태가 나온다. (주관적인 의견이다.) 크게는 공통된 감정도 있었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차이가 있고, 아마 그것이 각자의 취향과 기준일 것이다. 이를 공유하면서 나는 개인이 가진 서로다른 팬심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다른 감정에서 기인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또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까지도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다른 사람이고, 다 다른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할 것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본인의 취향을 파악하고 소비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케이팝 팬덤이 집단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각자 의견을 펼치기를 바란다. 이것은 특수한 개인 소비자로서의 바람이기도 하고, 작은 스트림까지 고려한 기획을 제공하고 싶은 생산자로서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 바람이 커진다면 훗날 파도가 되어 산업에 큰 작용을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도 있다.
워크샵이 끝나고도 나의 오래된 케이팝 친구들과 각자 케이팝 일대기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아주, 정말, 많이, 심하게 가지고 있다. 소규모 워크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유익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마냥 꺼려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꼭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본인이 최애, 아이돌, 케이팝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그 속에는 본인의 취향과 욕망과 기준이 모두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본인에게 새로운 케이팝 생활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나 또한 이번 워크샵 기간 동안 1년 8개월 간의 사랑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입덕은 언제나 짜릿하다. 새로운 대상을 탐구하는 감정이 무척이나 반짝이고 빛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워크샵과 입덕, 두 가지 이벤트가 나에게 포텐셜이 되어 기획자와 소비자라는 두 역할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상당히 재미있고 기쁘다. 비로소 J와 L, Job과 Love 사이에 존재하는 Kpop의 균형감을 잡은 기분이다. 부디 많은 케이팝 팬이 본인의 사랑 공식을 찾기를 바란다. 기본 사랑 공식은 모르지만 나는 다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겠다는 NU ABO를 들으면서.
글쓴이 러트
해당 글은 AAD(ArtsActsDays)에서 진행한 '케이팝 하는 여자들'의 글쓰기 워크숍, ‘쿠킹 케이팝’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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